조만간 정부의 콘텐츠 관련 진흥기관이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 통합된다. 영화를 제외한 대부분의 문화콘텐츠 장르들이 이 기관을 통해 통합적으로 지원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과거에는 장르별로 진흥기관이 나뉘어 있었기 때문에 항상 중복지원의 폐해가 지적돼왔고, 장르간 융합 프로젝트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콘텐츠 시장은 이미 장르 구분 없이 융합하며 변신하고 있는데, 정작 진흥기관들은 각각의 조직 논리 때문에 효과적인 지원의 기회를 상당 부분 놓쳐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기관이 통폐합됐으니, 과거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달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 통합되는 기관들
산업진흥이라는 강박증
다만 한 가지 주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정책입안자들이 '산업진흥'이라는 강박증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것이다. 산업진흥은 어떻게 보면 '결과물'이다. 복잡다단한 산업시스템이 소비자와 효과적으로 화학반응을 일으키게 되면 자연스런 열매로 산업진흥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앞의 과정은 등한시하고 결과만을 조급하게 내놓려고 한다면, 문화산업계도 한국 스포츠계와 같이 '저변과 아마추어는 없고, 프로만 있는' 고질적인 가분수 구조를 고착화시킬 확률이 높다.
지난 WBC에서 한국이 결승에 오르자 온국민은 열광했다. 많은 언론들이 4,000개가 넘는 고교야구팀을 갖고 있는 일본을 60개 밖에 안 되는 한국이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는 사실을 알리며 자긍심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자긍심을 가져야 할 내용일까? 해를 거듭할수록 학교야구팀이 사라지는 마당에, 야구하겠다는 아이들은 갈수록 줄어드는 마당에 과연 언제까지나 WBC의 영광을 지속할 수 있을까?
'산업진흥'의 강박증이 갖는 문제점은 바로 '기업을 위한 정책'이 주로 수립된다는 것이다. 산업의 주체가 바로 기업이라는 생각에 정책입안자들이 '기업인'을 주로 만난다. 그들에게서 정보를 얻고, 그들에게서 아이디어를 구한다. 그러니 나오는 정책들이 대부분 '기업을 살리기 위한 것'들이다.
기업이 살아나면 산업이 살아난다?
"기업이 살아야 산업이 산다"는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니다. 산업이 살아나는 데 있어서 기업은 중요한 변수이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특출한 기업이 시장을 창출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경우에서는 역으로 시장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레 기업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인들이 정부에 대해 지원을 요청하면서 내뱉는 이 주장은 쉽게 말해 "자기를 특출한 기업으로 특별대우 해달라"는 소리다.
최근 영화시장과 드라마 시장을 보자. 소위 말해 투자에 관해서는 내로라는 '꾼'들이 모여서 베팅을 해보지만, 본전이라도 찾은 경우가 20%를 넘을까 말까다. 그런 시장에 정부가 직접 투자를 한다?
정부는 꾼들과는 달라서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것이 참 많다. 콘텐츠의 내용이 너무 자극적이라든지, 미풍양속에 반한다든지, 그리고 해당기업이 능력은 출중하지만 법률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다든지 하면 결코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저렇게 따지면, 꾼들의 투자보다 훨씬 성공확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매년 막대한 예산을 기업들의 제작지원에 쏟아붓는다. 왜냐? 산업진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업진흥을 하려면 기업들이 뭔가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창작자와 소비자의 상대적 소외
그러는 가운데 산업의 토대가 되는 창작자들과 산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외면 받는다. 기업이 씌워준 안경을 끼고 산업을 바라보는 정책입안자들은 '기업을 지원하면 자연스레 창작자도 육성되고, 소비자들도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기업 입장에서 굳이 창작자를 육성하지 않아도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방법이 있다면(해외에서 원작을 사오는 것과 같은) 당연히 그것을 선택할 것이고, 소비자는 기업이 만들어놓았다고 해서 덥썩 물 만큼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껏 국민 세금으로 기업에 찔러줬더니 창작자는 여전히 배고프고, 소비자는 콘텐츠를 외면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지는 것이다.
이제 발상을 좀 바꿔보자. 문화산업의 진흥에 있어서 가장 자연스런 그림은, 내가 생각하기에, 바로 이것이다.
1. '갑'이라는 창작자가 활동한다.
2. 그의 활동에 '을'이라는 소비자가 반응한다.
3. 이 현상을 포착한 '병'이라는 기업이 사업화시킨다.
창작자와 소비자 사이의 반응이 핵심
이정도는 돼야 문화산업이 성공할 확률이 올라가지 않을까? 이 논리대로라면 기업의 이야기만 듣고 수립하는 정책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나치게 '산업논리'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화산업의 시장의 핵심은 바로 '창작자와 소비자간의 반응'이다. 그 반응이 확실하면 기업에 의한 자본과 인력 투입은 자연스레 이뤄진다. 소위 말하는 '스타콘텐츠'도 이런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소비자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된 만화 <식객>
과거에는 장르별로 진흥기관이 나뉘어 있었기 때문에 항상 중복지원의 폐해가 지적돼왔고, 장르간 융합 프로젝트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콘텐츠 시장은 이미 장르 구분 없이 융합하며 변신하고 있는데, 정작 진흥기관들은 각각의 조직 논리 때문에 효과적인 지원의 기회를 상당 부분 놓쳐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기관이 통폐합됐으니, 과거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
|
| |
|
산업진흥이라는 강박증
다만 한 가지 주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정책입안자들이 '산업진흥'이라는 강박증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것이다. 산업진흥은 어떻게 보면 '결과물'이다. 복잡다단한 산업시스템이 소비자와 효과적으로 화학반응을 일으키게 되면 자연스런 열매로 산업진흥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앞의 과정은 등한시하고 결과만을 조급하게 내놓려고 한다면, 문화산업계도 한국 스포츠계와 같이 '저변과 아마추어는 없고, 프로만 있는' 고질적인 가분수 구조를 고착화시킬 확률이 높다.
지난 WBC에서 한국이 결승에 오르자 온국민은 열광했다. 많은 언론들이 4,000개가 넘는 고교야구팀을 갖고 있는 일본을 60개 밖에 안 되는 한국이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는 사실을 알리며 자긍심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자긍심을 가져야 할 내용일까? 해를 거듭할수록 학교야구팀이 사라지는 마당에, 야구하겠다는 아이들은 갈수록 줄어드는 마당에 과연 언제까지나 WBC의 영광을 지속할 수 있을까?
'산업진흥'의 강박증이 갖는 문제점은 바로 '기업을 위한 정책'이 주로 수립된다는 것이다. 산업의 주체가 바로 기업이라는 생각에 정책입안자들이 '기업인'을 주로 만난다. 그들에게서 정보를 얻고, 그들에게서 아이디어를 구한다. 그러니 나오는 정책들이 대부분 '기업을 살리기 위한 것'들이다.
기업이 살아나면 산업이 살아난다?
"기업이 살아야 산업이 산다"는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니다. 산업이 살아나는 데 있어서 기업은 중요한 변수이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특출한 기업이 시장을 창출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경우에서는 역으로 시장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레 기업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인들이 정부에 대해 지원을 요청하면서 내뱉는 이 주장은 쉽게 말해 "자기를 특출한 기업으로 특별대우 해달라"는 소리다.
최근 영화시장과 드라마 시장을 보자. 소위 말해 투자에 관해서는 내로라는 '꾼'들이 모여서 베팅을 해보지만, 본전이라도 찾은 경우가 20%를 넘을까 말까다. 그런 시장에 정부가 직접 투자를 한다?
정부는 꾼들과는 달라서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것이 참 많다. 콘텐츠의 내용이 너무 자극적이라든지, 미풍양속에 반한다든지, 그리고 해당기업이 능력은 출중하지만 법률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다든지 하면 결코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저렇게 따지면, 꾼들의 투자보다 훨씬 성공확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매년 막대한 예산을 기업들의 제작지원에 쏟아붓는다. 왜냐? 산업진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업진흥을 하려면 기업들이 뭔가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창작자와 소비자의 상대적 소외
그러는 가운데 산업의 토대가 되는 창작자들과 산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외면 받는다. 기업이 씌워준 안경을 끼고 산업을 바라보는 정책입안자들은 '기업을 지원하면 자연스레 창작자도 육성되고, 소비자들도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기업 입장에서 굳이 창작자를 육성하지 않아도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방법이 있다면(해외에서 원작을 사오는 것과 같은) 당연히 그것을 선택할 것이고, 소비자는 기업이 만들어놓았다고 해서 덥썩 물 만큼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껏 국민 세금으로 기업에 찔러줬더니 창작자는 여전히 배고프고, 소비자는 콘텐츠를 외면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지는 것이다.
이제 발상을 좀 바꿔보자. 문화산업의 진흥에 있어서 가장 자연스런 그림은, 내가 생각하기에, 바로 이것이다.
1. '갑'이라는 창작자가 활동한다.
2. 그의 활동에 '을'이라는 소비자가 반응한다.
3. 이 현상을 포착한 '병'이라는 기업이 사업화시킨다.
창작자와 소비자 사이의 반응이 핵심
이정도는 돼야 문화산업이 성공할 확률이 올라가지 않을까? 이 논리대로라면 기업의 이야기만 듣고 수립하는 정책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나치게 '산업논리'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화산업의 시장의 핵심은 바로 '창작자와 소비자간의 반응'이다. 그 반응이 확실하면 기업에 의한 자본과 인력 투입은 자연스레 이뤄진다. 소위 말하는 '스타콘텐츠'도 이런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 |
|
|
따라서 정부의 지원은 뒷단에 있는 기업활동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검증되지 않은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중간단계인 '창작자와 소비자와 사이의 반응'이 풍성하게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 반응이 풍성하면 산업화는 자연스럽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문화정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동방신기 사태類, 공개된 시장(open market)이 해법 (0) | 2009/08/06 |
|---|---|
| 저작권 정책, 차라리 앱스토어에서 배워라 (2) | 2009/07/23 |
| P2P는 언제까지 희생양이어야 하나? (2) | 2009/04/27 |
| 문화산업정책, '산업 강박증'에서 벗어나야 (2) | 2009/04/24 |
| 인디문화 육성, 시장이 아닌 생태계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0) | 2009/04/23 |
| 음원가격 담합 행위, 누구 책임일까? (0) | 2009/04/17 |
-
무량수 2009/04/27 11:06
굉장히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에서 하는 모든 일은 언제나 좋은 결과만을 도출하기 위한 정책들이 아니었나 라고 생각합니다. 문화 컨텐츠와 관련된 부분에서도 문화산업을 키우려면 그 바탕이 되어줄 사람들을 키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문화도 기술이다 라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만...
스타 하나를 키우기 보다 그 바탕을 다져주는 것이 중요할 텐데 말이지요...-
괴나리봇짐 2009/04/27 11:12
나올 수 있는 이야기와 아이디어는 다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디테일이라고 생각해요. 산업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해서 기계적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분위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디테일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

Prev
Rss Feed